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일터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차가운 공기는 기분을 맑게 해 주었고 오늘은 어디를 청소하러 갈 것인가 궁금함도 잠시.. 이젠 조금 익숙해져서 인지 그저 그런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오늘은 공사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무실을 청소해야만 했다. 나는 오늘도 청소기를 맡았고 한층 전체의 사무실을 청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크게 어렵진 않았다. 그저 똑 같은 일상(똑 같은 바큠질)의 반복이었다. 청소를 하면서 머릿속에선 이렇게 호주에 와서 청소만 하다 갈 것인가?’ 하는 암울함이 나를 엄습하기도 했다.



호주 원주민 에버리진의 전통악기공연


 

사무실 청소가 끝내고 나니 하루가 다 가버렸다. 피곤함에 지쳐 집에 돌아와서 빵 한 조각을 꺼내 먹으려던 찰나 한인식당 파트타임을 하고 있던 쉐어하우스 친구가 장사하고 남은 도시락 가져왔다고 같이 먹자고 했다. 남은 밥이라.. 그것도 그저 도시락.. 기분도 썩 좋지 않고 피곤한 나머지 그냥 빵만 먹고 쉬려 했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닭고기가 쌀밥과 함께 어울려 있고, 그 옆엔 탐스러운 모습의 월남쌈이 놓여있었다. 그 광경에 나의 피곤함은 싹 가셨고 보기만 해도 행복한 감정이 피어 올랐다. 친구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뭐라도 가져가야 할 것 같아 소중하게 아껴뒀던 맥주 두 병을 가져와 같이 마시며 저녁을 함께했다.

 

아름다운 달링하버가 보이는 베란다에서 이로운 양식과 함께


 

생전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 사람처럼 먹고 있는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친구는 조금 먹더니 더 이상 먹질 않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매일 남는 음식이 많아 자주 먹는다고 했다. 너무나 잘 먹는 나를 위해 매일 가져와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 자유롭게 꺼내 먹으라고 했다 ㅎㅎ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이로운 양식을 주는 그 친구에게 몇 년 알고 지냈던 친구와 같은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먹는 것보다 그들의 삶에 귀 기울였다.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루 힘겹게 식당에서 일하고 그렇다고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떠나왔고 타지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했다.

 

 

밤하늘 아래 달링하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 친구는 컴퓨터공학과인 나의 전공을 알고 나선 스마트폰 수리 관련 일을 해보는 건 어떤지 물었다. 생전 스마트폰 수리는 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던 나는 그냥 흘려 들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모두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잘 준비를 다하고 행복한 포만감에 누워있었으나 오전 오후 내내 했던 청소를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핸드폰수리? 한번 써볼까.. 써봐야 하나.. 써봐짜 되려나…… 에라이 안되면 말지, 그래 한번 써보자!!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키고 미리 작성해뒀던 영문 이력서와 간략한 커버레터를 적혀있던 회사 메일로 제출했다. 어렸을 적 라디오 조립하고 부시고 했던 기억은 있었지만 스마트 폰 수리는 생전 해본 적이 없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은 조금 편해졌고 이내 잠이 들었다.

(제발…??)

 

청소알바를 가기위해 새벽 4시에 집앞으로 나가야 했기에 새벽3시3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을 청했다. 평소 엄청나게 걷던 터라 눕자마자 잠이들었고 잠시후 눈을 떠보니 새벽3시25분 (????) 알람도없이 5분전에 눈이떠졌다. 군대에서 이병때 가끔 5분전 기상을 한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살아보려는 의지가 가득했던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빵에 잼을발라 한조각 먹고 간단하게 씻은후 밖으로 나갔다. 3시55분쯤 나가있었는데 사장님은 미리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샤프하고 젊으셔서 그런지 평소에 청소하는분의 이미지가 전혀 아니였다. 하긴 나도 내가 여기서 청소를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


우와 시드니에서 드라이브다!! 



이상하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를타고 시드니를 돌아댕기는게 너무나 행복했다. 시드니 중심가 주변은 크고 넓고 깨끗했다. 태어나서 처음 타를 타는 사람처럼 창밖을 쳐다보며 헤헤 쪼개기 바빴다. 그리고 도착한 첫 근무지, 이곳은 이사를 위해 짐을 모두 옮기고 텅 빈 집이였다. 호주에선 이사할 때 집을 깨끗하게 넘겨주지 않으면 보증금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구석구석 천장과 창문 그리고 기름기 가득 낀 주방,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다. 청소에도 레벨과 단계가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처음이다보니 최하레벨이였고 엄청난 바큠(청소기)을 어깨에 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소해야 했다. 


승모근과 이두근을 키워준 나의 바큠



처음에는 큼지막한 바큠에 움직이는것도 힘들었다. 도대체 어디가 더러운지도 몰랐고, 젠장할 바큠헤드는 왜이리 뻑뻑한지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소리는 왜이리 큰지 귀가 멍멍했고 줄은 왜자꾸 꼬이는지 이곳저곳 돌아댕길수가 없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을까 더러운게 안보였던 나의 눈에는 청소를 해야할 먼지만보였고 손목스냅을 이용해 뱀처럼 바큠헤드를 이리저리 흔들며 청소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또한 청소기 소음은 마음속 노랫소리로 들리지 않았고 내가 움직이는 길을 미리 예측하여 청소기 전기줄을 미리 깔아놓으며 이리저리 신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청소하고 다음 근무지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청소해야 했으나 청소를 마친 후 깨끗해진 집을 볼때면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이러다 시드니에서 청소만 하다 가겠다.. 하는 걱정이 마음을 덮쳐오기도 했지만 우선 먹고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정말 미친듯이 바큠질을 했던것 같다.


집안에 폭포가 있었던 미친집


드디어 나의 적성을 찾은것일까? 아니면 이것도 정신승리였을까.. 아무튼 하루하루 숨쉬는것도 아까웠던 나에게 시급14불에 하루 6시간정도 일하는바람에 나의 호주 라이프를 연장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오는길, 그동안 차갑기만 했던 호주가 왜이리 포근하게 느껴지던지.. 매일 지나치기만 했던 마트에 들려 포도 한송이와 맥주를 사와서 빵과 사과 그리고 포도를 먹고 베란다에 나와 맥주한잔하고 이것이 인생이고 행복이구나 하는 중2병스러운 생각과 함께 기분좋게 잠들었다.



피아몬트st 의 한 아파트 베란다. 

꿀같은 전망을 바라보며 맥주한잔 캬캬캬




그리고 눈떠보니 AM 3:25

(아놔 젭알...)






250만원만 들고 1년간 살아보려 떠난 호주, 그리고 도착한 시드니. 당장 일을 할줄만 알았지만 한달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웹싸이트 바로 호주나라. 그곳에선 일자리가 넘쳐났다. 시급 9~11불의 한인식당, 14불의 청소, 16불의 농장 하지만 이것들은 내가 하고싶었던 일들이 아니였다. 결국 일거리를 찾으러 돌아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영어한마디 못해서 햄버거 조차 시켜먹을 수 없었던 나인데.. 어떻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나를 조여오기만 했다. 


달링하버 비아몬트 브릿지


하루하루가 돈이였다. 숨쉬는것도 아까웠다. 물은 왜이리 비싼건지 수돗물을 벌컥 들이켜야했고(시드니 수돗물은 마셔도 된다고합니다. 맛은 그닥..) 30분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거리는 무조건 걸어다녔다. 누구는 못와서 안달인 이곳에서 나는 왜 이렇게 돈생각만 해야 하는지.. 주변에 행복에 겨워 하는 사람들은 왜이리 많은지.. 식당안의 사람들은 왜이리 행복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있는지..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수십번도 더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긴 너무나도 쪽팔렸다.. 뭐라 변명하기도 싫었다.. 가족들, 친구들 만나서 뭐라해야 할지.. 



타운홀 주변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돌아다니고 집에 올때마다 우울하게 만들었던 달링하버


내가 생각했던 호주?


포기할순 없었다. 일을 찾아다녀야했다. 아침은 빵한조각에 잼, 점심은 콘푸라스트에 빵한조각, 저녁은 사과에 빵한조각.. 맛있는 스테이크 한조각 사먹는것은 너무 사치였다. 매주 빠져나가는 140불 (당시 한화로 약 13만5천원) 한달이면 약 65만원정도 빠져나가고 거기다 통신비, 식비, 교통비 포함하면 내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약 2달정도였다. 이건 뭐.. 그래도 좋았다. 거실 한 구석에 테이프로 막 붙여서 꾸며놓은 약 1평짜리 방에서 생활해도 좋았다. 가끔 술마시고 시끄럽게 들어오는 쉐어하우스 친구도 좋았고 집주인 누나도 좋았다. 그냥 사람이 좋았나보다. 


인생즐기며 사는듯한 호주인


호주로 떠나기 전 다짐했던 몇가지 

1. 절대 농장, 공장은 가지 않겠다. 

2. 호주인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겠다. 

3. 한국인들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벌써부터 3번은 깨져버릴것만 하고 1번의 유혹(그중에서도 농장)에 너무나도 흔들렸다. 그렇게 하루종일 사람뽑는곳을 찾아다녔다. 너무나 배고프고 다리가 아파왔지만.. 나의 다짐을 깨버리긴 싫어 조금 버텨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고... 결국!!! 나는 청소잡을 잡게된다.. 

나의 다짐 1번을 어겼을까? 아니다.. (오히려 농장, 공장이 더 나을까?) 2번은? 아니다 분명.. 집주인은 모두 호주인이였다. 그럼 나머지 3번은? 전보다 조금 더 친해지는것만 같다... 시급 14불 하루 6시간정도 일하고, 새벽 4시 시작, 주말 그런거 없음, 하지만 평일에 일이 없을수도 있음.. 좋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호주에 있는 고급 사무실을 다 가볼 수 있다!

호주에 있는 고급 빌라는 다 가볼 수 있다!

가끔 호주인 집주인과 대화 가능!

교통비 아끼려 걸어다녔던 시드니를 무료로 차타고 돌아댕길 수 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정신승리하려 애썼다. 청소..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청소일 은근히 기대되는건 왜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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