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알바 2주차 매일같이 바큠질을 하고 있는 나에게 조금 실증이 났다. 호주 사람들은 청소를 하는 나를 마주할 때 먼저 웃어주고 인사해주었다. 이러한 시선 덕분인지 청소부라는 직업이 볼품없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호주의 삶 속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 떠났던 호주인데.. 이렇게 청소만 할 순 없었다. 결국 청소가 없는 날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시드니 명물 하버브릿지

(돈내면 저 철골위로 걸어갈 수 있다.)


 

오지잡(호주인 사장이 운영하는 곳)을 구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특출 난 기술이 있거나 영어를 현지인만큼 하거나.. 그것이 아니면 도시에서 오지잡을 구하기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차선으로써 한인잡을 찾아 나섰고 몇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우선 시드니 타운홀 바로 주변 스시집, 간판은 일본음식 스시집이였지만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한식보단 일식이 이미지가 더 좋아서였을까? 아이러니하기만 했다. 면접이 시작되고, 식당 사장님은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전공은 무엇인지 호주에 언제 왔는지 관련 경력이 있는지 비자는 언제 만료되는지 등등..

 


시드니에 돌아댕기는 이름모를 새



 

이것저것 답변이 끝나고 사장님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이어나갔다. 아내와 함께 더 나은 삶을 위해 호주로 떠나왔고 대출을 받아 식당을 차렸다고 했다. 아직 시작단계라 적응도 덜 되었고 하루하루 쉽지 않다고 하셨다.. 도대체 무엇이 이 젊은 부부를 낯선 타지로 향하게 하였을까? 우리나라는 타지에서 현지인에게 차별 받으며, 대출받으며 힘겹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든 곳일까? 아직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을 하지 않은 나에겐 여러 생각이 들게 한 면접이었다. 30분 이야기를 나눴을까? 사장님은 합격하면 문자 준다 하셨다. 나는 자리를 일어나 집으로 향했고 집으로 가던 중 나와 똑 같은(당시 유행했던 유니클로들)패션의 한국인느낌의 동양인이 방금 면접을 봤던 식당으로 이력서를 들고 향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한인잡도 만만치 않았다. 시드니 도시에는 워홀러가 너무 많다보니 시급도 높지 않았고 그것마저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른 면접지로 향했다. 이번에는 시드니의 한인타운 스트라스필드. 너무 놀랐다. 모든 간판은 한국어 그리고 한국식 가게들이 즐비했고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한국노래..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한국인이었다. 이곳에 위치한 한국의 마트와 같은 느낌의 마켓에 면접을 보러 갔다. 이곳에서 파는 모든 음식과 물건들 그리고 손님들 전부 한국산이었다. 심지어 매장 직원이 직접 배달 서비스까지 해주는.. 한국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곳 사장님은 조금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나 돈 좀 벌었어 하는 느낌과 말투였다.

 

 


호주 Anzac 전쟁기념관




사장님은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매장 정리와 배달서비스를 맡을 것이고 적응기간 3개월 지나면 시급을 올려준다고 했다. 면접 보러 멀리까지 왔으니 밥도 먹고 가라 하셨다. 직원들을 위해 요리하시는 분을 고용하여 무료로 식사가 가능하도록 하셨다. 숙소도 가까운 곳을 알아봐주셨고 집주인 할머니와 함께 약 10분거리의 숙소도 둘러보고 왔다. 이곳에 살게 된다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자신의 손자와 한 방에 지낼 거라 하셨다이곳은 시급이 조금 짜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호주오면서 다짐했던 3가지중 첫번째(농장, 공장은 가지 않겠다.)만 빼고 모두 위배된다 생각했다. 호주의 삶도 느낄 수 없을뿐더러 호주인을 만날 가능성도 줄어들고.. 차라리 한국에서 알바하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할아버지들이 바둑판에 바둑두시는데 

역시나 스케일이 다른 이곳은 ...




결국 이번엔 조금 생각하고 연락을 드리겠다 말씀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마트 뿐인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집에오는길 시드니의 야경은 왜이리 우울해 보이는지.. 집에 도착하고 침대에 누워 조금 쉬려던 찰나 핸드폰은 진동으로 문자가 왔음을 알렸고, 문자를 확인해보니 스마트폰 리페어 테크니션 역할로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였을까? 그 기쁨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터져 나왔다.

 

OH SSI BA!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일터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차가운 공기는 기분을 맑게 해 주었고 오늘은 어디를 청소하러 갈 것인가 궁금함도 잠시.. 이젠 조금 익숙해져서 인지 그저 그런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오늘은 공사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무실을 청소해야만 했다. 나는 오늘도 청소기를 맡았고 한층 전체의 사무실을 청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크게 어렵진 않았다. 그저 똑 같은 일상(똑 같은 바큠질)의 반복이었다. 청소를 하면서 머릿속에선 이렇게 호주에 와서 청소만 하다 갈 것인가?’ 하는 암울함이 나를 엄습하기도 했다.



호주 원주민 에버리진의 전통악기공연


 

사무실 청소가 끝내고 나니 하루가 다 가버렸다. 피곤함에 지쳐 집에 돌아와서 빵 한 조각을 꺼내 먹으려던 찰나 한인식당 파트타임을 하고 있던 쉐어하우스 친구가 장사하고 남은 도시락 가져왔다고 같이 먹자고 했다. 남은 밥이라.. 그것도 그저 도시락.. 기분도 썩 좋지 않고 피곤한 나머지 그냥 빵만 먹고 쉬려 했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닭고기가 쌀밥과 함께 어울려 있고, 그 옆엔 탐스러운 모습의 월남쌈이 놓여있었다. 그 광경에 나의 피곤함은 싹 가셨고 보기만 해도 행복한 감정이 피어 올랐다. 친구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뭐라도 가져가야 할 것 같아 소중하게 아껴뒀던 맥주 두 병을 가져와 같이 마시며 저녁을 함께했다.

 

아름다운 달링하버가 보이는 베란다에서 이로운 양식과 함께


 

생전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 사람처럼 먹고 있는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친구는 조금 먹더니 더 이상 먹질 않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매일 남는 음식이 많아 자주 먹는다고 했다. 너무나 잘 먹는 나를 위해 매일 가져와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 자유롭게 꺼내 먹으라고 했다 ㅎㅎ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이로운 양식을 주는 그 친구에게 몇 년 알고 지냈던 친구와 같은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먹는 것보다 그들의 삶에 귀 기울였다.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루 힘겹게 식당에서 일하고 그렇다고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떠나왔고 타지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했다.

 

 

밤하늘 아래 달링하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 친구는 컴퓨터공학과인 나의 전공을 알고 나선 스마트폰 수리 관련 일을 해보는 건 어떤지 물었다. 생전 스마트폰 수리는 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던 나는 그냥 흘려 들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모두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잘 준비를 다하고 행복한 포만감에 누워있었으나 오전 오후 내내 했던 청소를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핸드폰수리? 한번 써볼까.. 써봐야 하나.. 써봐짜 되려나…… 에라이 안되면 말지, 그래 한번 써보자!!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키고 미리 작성해뒀던 영문 이력서와 간략한 커버레터를 적혀있던 회사 메일로 제출했다. 어렸을 적 라디오 조립하고 부시고 했던 기억은 있었지만 스마트 폰 수리는 생전 해본 적이 없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은 조금 편해졌고 이내 잠이 들었다.

(제발…??)

 

아침 일찍 일어나 문자를 확인해보니 오늘은 일이 없어 쉬라고 하신다. 아놔 어제 알려주던가.. 라는 생각과 함께 드디어 제대로 시드니 관광을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머리를 스쳤다. 우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조금 더 잠을 청하고 여행을 떠났다! 우선 내가 살고 있는 피아몬트를 벗어나고 싶었다. 여유와 함께 시드니를 둘러보니 정말 멋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보면 서울 여의도와 흡사해 보이기도 했다. 거리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아시안이라는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사진찍어달라 부탁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쳐갔다. 하지만 중간중간 너무나 개성 넘치는 사람들도 보였고 너무나 유쾌한 장면을 보기도 했다. 달링하버 아래 길거리에선 몇몇 사람들이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코믹한 공연을 하고 있던 일본인이 지나가는 남자 게이커플에게 와 게이 지나간다~~!!!! 라고 놀리기도 하고 놀림 받은 게이들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기 보단 그래 나 게이야~~” 하면서 웃통을 까 배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차마 웃지 못했다. 남남커플이 당당히 낮에 돌아다니기, 게이를 보고 큰소리로 놀리기, 놀림 받은 게이들이 당당하게 반격하기. 나는 이렇게 삼연 타로 문화충격을 받았고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박장대소 하고 있었고 공연자도 게이를 향해 너 진짜 최고야하는 제스처로 박수를 쳤다. 이곳은 다름을 차별하고 배척하기보단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님)



오페라하우스 주변에서 강아지와 공연하던 아저씨

 

그렇게 약 30분을 걸어서 드디어 호주의 관광명소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오페라하우스 주변부터 엄청난 인파로 북적이었고 저 멀리 오페라하우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며 걸음걸이도 빨라졌다. 사실 티비나 사진으로 많이 봐서 직접 봐도 크게 감흥이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열심히 청소하며 살아가서 그랬는지 오페라하우스를 쳐다보며 이상한 감동이 느껴졌다. 집 떠나와 어머니와 헤어진 순간부터 호주에 도착하고 어제까지 청소했던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나가던 호주 미녀 붙잡고 찍어달라했는데.. 

분명 나이스 포즈라고 했었는데...



오페라하우스 주변 벤치에서 한동안 머물며 바다를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도 세워보며 한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잘 될 거라 얘기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으로 출발!

 

 

오페라하우스 주변 벤치에서

다리가 약간 보임으로써 ..

(무엇을 표현하려 했을까)



이곳은 길거리에 정말 다양한 공연을 많이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이곳은 주로 악기를 이용했고 큰소리로 이목을 끌기 보단 조금 색다른 장르와 악기로 이목을 끌었다. 덕분에 돈이 없어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나에겐 정말 값비싼 공연이나 다름없어 너무나 고마웠다.





 

한참을 돌아댕긴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은 영어 한마디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미 알고 있는 길이지만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영어로 피아몬트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묻기로 하고 지나가는 영어를 쓸 것 만 같은 동양인에게 말을 걸었다. 허접한 발음이었지만 최대한 혀를 굴리며 “Excuse me~~ how to go to Pyrmont street?” 하고 나름 괜찮았다 만족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분은 나를 쓰윽 하고 쳐다보더니 저기..한국인이세요?” 라고 되물었고 아 네.. 한국인이시구나..” 하며 한국어로 친절하게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듣고 집으로 가는 길 왠지 모를 쪽팔림이 함께했고 


그날 밤 잠들기 직전 이불을 2~3번 찼던 것 같다.

첫날은 집 앞까지 와주셨지만 둘째 날부턴 약 15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새벽공기는 너무나도 상쾌했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 와인 병을 들고 다니며 병나발 하시는 무섭고 좀 씻으면 좋겠으면 싶은 아저씨를 스쳐 지나가야만 했다.  그래도 좋았다. 돈벌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돈돈돈 거리며 살았던 적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너무나 감사했다.


 

매일같이 걸어다녔던 피어몬트 거리



그렇게 새벽드라이브를 마치고 도착한 대저택, 담벼락과 함께 앞에는 커다란 수영장에 차고에 주차되어 있는 고급 승용차.. 과연 이렇게 집안에는 무엇이 있으며 누가 살지 궁금하기만 했다.



저 멀리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진짜 대금수저택



현관문을 열자 흔들의자 위에서 한가롭게 책을 보는 할머니.. 할머니 혼자였다. 이렇게 큰집에... 더욱더 놀라운 것은 청소할만한 먼지 없었지만 청소를 불렀다는거.. 청소 레벨이 낮았던 나는 바큠(청소기) 어깨에 매고 청소를 시작하려는 찰나 사장님은 옆에서 깨끗하게 청소하는 보다 청소하면서 물건 부시지 않는게 중요해, 식탁다리 의자다리 이런 청소할 특히 주의하고 무조건 조심스럽게!” 라고 당부하셨다.

 

 

먼지한톨 없던 엔틱양식 고급저택



청소를 했다기 보단 가구와 인테리어를 구경했고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처지보다 나은 강아지를 보며 조금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청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 이상하게 기분이 씁쓸하기만 했다. 돈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부자처럼 엄청나게 돈이 많아 삐까뻔쩍한 가구들과 자동차가 있다면 아무 걱정과 욕심 없이 살아갈 있을까? 또한 저렇게 돈이 많아도 혼자 씁쓸하게 외롭게 살아야 한다면...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일까..?

 

네 하라는 청소는 안하고 사진만 찍다왔네요..

(너무나 깨끗해 청소할 맛이 안났어요)



그렇게 깊은 생각에 빠져 집에 도착하니 너무나 배가 고팠다. 오늘도 역시나 처량하게 사과를 먹으면서 방금 전까지 했던 생각들이 개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많이 벌어 맛있는거 먹고싶은거 먹으리라 다짐했다.

 

내일은 일이 많아 돈을 많이 벌길 바라며 잠깐 눈을 감으려 했건만...

(눈감고 떠보니 또 출근시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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